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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태미 [물고기는 물을 거스르지 않는다] 갈대가 날리는구나. 어쩌면 너를 다시 볼 지도 모르겠어. 그렇지 않은가? 너는 항상 이맘때면 나를 찾아오니 말이야. 그러니 미리 편지를 써 두지. 가끔은 예감이 썩 잘 맞을 때도 있거든. 완연한 가을이야. 낙엽이 떨어지고, 바람이 부쩍 차졌어. 너는 싫어했었나, 이런 계절. 나는 좋아해. 내내 일만 하던 네가 잠시나마 쉬었던 시간. 말하지 않았나, 어렵다고. 생각을, 기억을 구체화시키는 건 정말 어려워. 난 너처럼 말을 잘 하지 못하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하지만 글로 쓰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편지라는 게 으레 그러하듯이. 그러니 찢지 말고 끝까지 읽어 주게. 길태미, 너도 칼잡이니 '등을 맡긴다' 는 말이 무언지 잘 알 거야. 더욱이 너는 대단하신 삼한 제일검이니 말이야. 내가 항상 .. 더보기
태미선미 [나를 죽이는 것은 너여야지] 나를 죽이는 것은 너여야 하지 않겠니. *** 아득한 가을이 도래했다. 고려 천지 이보다 추운 날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시린 바람이 태미의 몸 속에 파고들었다. 제 발 밑으로 낙엽이 굴러든다. 그것을 태미는 비적거리며 피한다. 답지 않게 사색에 잠기기 쉬운 계절이라 그는 더욱 조심해야 했던 것이다. 시린 손을 부여잡고 제 방에 들어앉았다. 여차하면 화사단이나 가 볼까 했으나 오늘은 별로 끌리지 않았던 탓이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손톱을 다듬는 긴 칼을 꺼내들었다. 사각, 사각. 흰 가루가 되어 떨어지는 제 몸체에 웃음이 새어나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웃기지 않아, 길선미? 올해도 가을을 맞았네. 그 차가운 손으로 칼자루나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길태미는 신경질적으로 칼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