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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육룡이 나르샤

선미태미 [물고기는 물을 거스르지 않는다]

   갈대가 날리는구나. 어쩌면 너를 다시 볼 지도 모르겠어. 그렇지 않은가? 너는 항상 이맘때면 나를 찾아오니 말이야. 그러니 미리 편지를 써 두지. 가끔은 예감이 썩 잘 맞을 때도 있거든.

완연한 가을이야. 낙엽이 떨어지고, 바람이 부쩍 차졌어. 너는 싫어했었나, 이런 계절. 나는 좋아해. 내내 일만 하던 네가 잠시나마 쉬었던 시간.  


   말하지 않았나, 어렵다고. 생각을, 기억을 구체화시키는 건 정말 어려워. 난 너처럼 말을 잘 하지 못하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하지만 글로 쓰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편지라는 게 으레 그러하듯이. 그러니 찢지 말고 끝까지 읽어 주게.

길태미, 너도 칼잡이니 '등을 맡긴다' 는 말이 무언지 잘 알 거야. 더욱이 너는 대단하신 삼한 제일검이니 말이야. 내가 항상 궁금한 것이 있는데, '삼한 제일검' 인가, '삼한 제 일검' 인가? 네가 최고라는 뜻인지 네가 첫 번째라는 뜻인지 아직도 모르겠군 그래. 아니, 그 손 멈춰. 아직 편지 안 끝났으니 찢지는 말아.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네가 등을 맡기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나는 네가 이인겸 밑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래, 솔직히 후회하면 좋겠다네. 이제라도 그 권력욕을 순전한 어린 날의 치기라고 자부했으면 좋겠단 말이야. 이해하겠나? 그게 무언데 그리 어렵단 말인가. 결국 그것은 한낱 기우이지 않았는가.


   어릴 적 등을 맞대던 우리를 잊었는가 싶어 한동안은 많이도 미웠네. 물에 비친 얼굴을 볼 때마다 잔잔한 수면을 주먹으로 치기 일쑤였지. 아마 너도 그랬겠지? 분명 거울을 던지거나 했을 게야, 넌 언제나 물건을 잘 부수었으니까.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야. 나는 왜 너를 이다지도 잊지 못하는 거지? 그래서 나는 더 지독하게 칼을 잡았네. 너와 다시 겨룰 수 있을 때를 기다리면서 칼날을 유지했어. 너를 만나 그 답을 들을 때까지.  


   사람 써는 소리가 즐겁나? 나는 그 칼로 권력을 썰었으면 좋겠어. 돈 버는 소리가 즐겁나? 나는 그 돈을 썰었으면 좋겠다네. 이렇듯 같은 것이 거의 없는 우리이지만... 빼도 박도 못하게 우리는 얼굴이 같지 않은가. 쌍둥이라는 지긋지긋한 덫으로 연결된 불쌍한 날짐승이지 않나. 그러니 우리는 더욱 엇돌았던 것이야.

그래, 그래. 여기까지 읽어 준 데에 고마움을 표하는 바야. 좋지 않은 글솜씨에 황망스럽기 그지없군. 사실 너를 기다리며 많은 글 연습을 했었는데, 이리 네가 본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멈춘 것 같아.

이제 곧 네가 올 것 같군. 아니, 내가 갈지도 몰라. 죽기 전에 개경은 한 번 가 봐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네 검이 춤을 추겠지. 이리저리 흩날리며 꽃을 뿌리겠지. 그러면 나는... 나는 그 검을 받아들일 거야. 물고기가 물의 흐름을 받아들이듯 나는 네 검을 품에 안고 깊숙이 찔러 넣을 거야. 그래, 그럴 거야. 이 편지가 더러운 피에 젖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그러면 넌 읽지 않을 테니까.

왜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해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듣는 목소리가 너의 것이라면 기꺼이 양보하지.  


   길태미, 너는 죽으면 하늘이 마중 나오는 사람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