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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육룡이 나르샤

인겸태미 [날]



   검이 맞붙기를 몇 합. 화사단에는 깊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수많은 화사단의 무사들 중 단 한 사람도 감히 나서지 못한다. 삼한 제일검과 수 합을 붙을 수 있는 검사? 들어보지도 못했다. 홍륜이 살아 돌아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실력에 그들은 모두 입이 닫혔던 게다.

짙게 풍기는 술의 향이 바람과 춤을 춘다. 동시에 검무를 추는 듯 유려하게 움직이는 칼날이 서로를 베어물기 위해 악을 썼다. 길태미가 잠시 비틀거리기를 몇 차례, 보랏빛 옷자락이 움푹 들어가 제 자취를 감추었다. 잔망스런 눈꼬리가 올라가며 그는 제 앞의 사내를 찬찬히 훑었다. 이 정도 검술 실력이면 백윤을 충분히 죽일 수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과연 누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유들해진 입꼬리가 비릿한 호를 그리며 올라갔다.


   그 자를 놓쳤다. 길태미는 바락바락 악을 쓰며 홍인방에게 울분을 쏟아내었다. 나를 건드리고 죽이지를 못 했으면 각오해야 할 거야. 빈약한 실소가 잇새에서 터져나온다. 합하, 합하께서 하신 일이다. 허한 열기가 옷자락 속을 굽이치는 느낌에 그는 거칠게 옷고름을 풀었다. 마치 '그' 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애송이인 저를 도당으로 입성시킨 것도, 일찍이 검술의 재능을 알아봐 삼한 제일검이 되도록 훈련을 시켜 준 것도 모두 합하께서 해 주신 것이었다. 고마운 마음보다는 의심하는 마음이 더 컸던 어린 날의 기억은 이미 뒤주 깊숙히 가둬 둔 지 오래다. 허나 아직도 그의 목소리는 길태미의 온 몸을 지배하기에 충분했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 화낼 때마다 뱃속 깊은 곳에서 악을 끌어올리는 행위, 누구보다 조용히 저를 불러내는 그런 표정까지. 어느 하나 길태미에게 영향이 미치지 않은 것은 없었다. 그가 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어르신, 왜 그러셨어요? 이를 깨무는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린다. 아니, 제 입 속에서 울리는지도 모른다. 무얼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시간을 보내는 것은 길태미답지 않았다. 가장 예쁘게, 그리고 정성스럽게 분을 칠했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합하를 모실 준비를 한다. 다른 점은, 그 두 손에 장검이 들려 있는 채다.


   벨 수 있을까? 모른다. 허나 '그' 는 '그' 를 벨 수 없다.